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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역사

청계천의 역사

 

요즘 날이 정말 푹푹 찌는데 이런 날이면 정말 일이고 뭐고 계곡에 발 푹 담그고 쉬고싶단 생각이 솟구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도심속 하천 청계천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청계천의 역사에 대해서도 필기시험은 물론 면접시험에 자주 등장하니 꼭 알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청계천의 역사 

 

청계천은 서울 도심 한복판 종로구와 중구를 가로질러 한강으로 합류하는 10.84km의 하천으로 조선시대에는 개천(開川)이라 부르다가 일재강점기 지명 정리 사업으로 청계천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여름철 장마 때 외에는 수량이 많지 않은 건천이지만 홍수가 나면 하천이 넘쳐 집들이 떠내려가고 익사 사고가 빈번하였으며 생활 오수가 빈민촌 형성으로 조선 개국 이래로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제3대 태종이 개거공사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하였고, 그 후 영조때에는 준설·양안석출·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하였습니다. 이 공사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되었습니다.

 

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가 이루어졌고,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8·15광복 후에도 청계천의 유지관리에 힘써 왔고, 1958년 6월부터 복개공사에 착수, 1960년 4월에 1단계로 광교~주교 1~4가 간을 완공하여 너비 50m의 간선도로를 만들었습니다. 1967년~1976년 청계고가도로를 건설, 상류에서 성동구 사근동까지 5.4km 구간이 복개되었습니다.

 

이후 2003년 7월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청계천복원사업으로 2년여 간의 공사 끝에 청계천 위에 놓인 총 22개의 다리와 정조반차도를 비롯한 역사적 자료를 복원한 도심 속 하천으로 개통되었습니다.

 

 

 청계천의 역사 간단요약

1760'  영조 : 준설작업 직선화

1958~ 이승만~박정희 : 복개작업

2003~2005 노무현때 서울시장 이명박 : 복원

 

 

 청계 8경

청계 1경 : 청계광장 : 청계천의 시작점으로 분수와 작은 폭포가 조성되었습니다.

청계 2경 : 광통교 :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강씨의 묘를 이장하면서 묘에 사용했던 돌들을 이용하여 만든 다리이입니다.

청계 3경 : 정조반차도 : 정조의 능행반차도를 재현한 작품으로 광통교와 삼일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청계 4경 : 패션광장 : 버들다리와 오간수교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근처에 있는 동대문 의류시장의 작물을 소재로 만든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청계 5경 : 빨래터 :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 있으며 예전 아낙들이 빨래를 했던 장소를 상징화하여 조성하였습니다.

청계 6경 : 소망의 벽 : 황확교와 비우당교 사이에 있으며 예전 아낙들의 빨래를 했던 장소를 상징화하여 조성하였습니다.

청계 7경 : 존치교각 터널분수 : 존치교각은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하여 과거 청계고가교의 교각의 일부를 남겨두었고 그 옆에는 터널 형태의 분수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청계 8경 : 버들 습지 : 자연 친화적인 생태공간으로 어류나 양서류의 서식공간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오늘은 도심 속의 하천 청계천의 역사와 청계 8경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청계 역사는 필기시험에, 청계 8경은 면접시험에 자주 나오는 질문입니다. 서울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라면 자주 지나치게 되는 이 곳 청계천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음에 더 유익한 정보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