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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험하게, 중국이 호주를 공격했다

은밀하게 위험하게, 중국이 호주를 공격했다


"시진핑 주석이 그러는데 한국은 과거에 중국의 일부였다더라."

2017년 처음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입에서 폭로된 말입니다. 트럼프의 입방정 때문에 시 주석의 속내를 알 수 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시 주석의 허튼소리에 주목한 호주 석학이 있습니다. 찰스스터트대 공공윤리 담당 교수이자 중국 영향력 이슈 권위자인 클라이브 해밀턴입니다. 그는 신간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에서 다른 나라의 역사도 서슴지 않고 바꾸려는 중국 공산당의 야욕에 신랄한 비판을 가합니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남중국해까지 뻗고 있습니다. 중국은 2000년 전에 남중국해 전역을 발견해 이름을 붙이고 탐사하고 이용했다고 주장하며 통치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영토 분쟁은 결국 헤이그 중재재판소까지 갔습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고기를 잡았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그것이 남중국해 도서를 통치할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국제적 판결마저 무시하고 신경 쓰지 않는 게 중국 공산당입니다. 호주의 대표적 중국학자인 존 피츠제럴드 교수는 베이징의 전략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중국은 분쟁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때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적 근거를 만들어 육상과 해상 영토에 소유권을 세운다. 중국 지도층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다른 나라를 침략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이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면서 미·중 사이에 낀 국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원자재 강국'인 호주 또한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성격의 4개국 안보 협력체인 '쿼드' 회원국인 호주는 최근 반중 노선으로 중국과 최악의 갈등 국면에 놓여 있습니다. 2016년 호주 정계를 강타한 차이나 스캔들은 호주의 대중국 노선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중국이 호주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주요 정당에 큰돈을 기부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이 사건에 충격받은 해밀턴 교수는 중국 공산당이 호주의 정치부터 문화까지, 부동산에서 초등학교까지 깊숙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베이징의 '영향력 침투'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를 낱낱이 분석합니다. 이 결과물인 '중국의 조용한 침공'은 호주 사례를 통해 중국이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는 다른 국가들에 어떤 전략을 갖고 움직이는지를 심도 있게 보여줍니다.

 

 


중국의 로비를 받은 정치인들은 중국 기업과 중국 공산당에 우호적인 정책을 만들고, 그렇게 들어온 중국 기업들은 호주의 땅과 기업을 무서운 속도로 사들입니다. 중국 문화의 산실인 공자학원은 호주 대학은 물론이고 호주의 초등학교와 중·고교에도 침투해 친중 정서를 확산시킵니다. 차이나 머니는 연구소와 언론에도 스며들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도 호주가 수출하는 물량 중 약 3분의 1이 중국으로 들어갑니다. 호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중국입니다. 따라서 일부 경제평론가들은 중국이 재채기만 해도 호주는 폐렴에 걸릴 수 있으니 거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중국은 호주뿐만 아니라 파산 위기에 놓인 그리스에도 손을 뻗쳐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대가로 주권을 조금씩 빼앗고 있습니다.

 

2018년 호주에서 출간된 이 책은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출간 금지 조치까지 당했으나 가까스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현재 중국과 거리를 두고 있는 호주 정부의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일본에서도 출간 즉시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습니다. 호주는 최근 화웨이를 5세대 이동통신(5G) 사업에서 배제하기로 했으며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업무협약(MOU) 2건을 파기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발원지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 국가도 호주입니다. 물론 중국은 호주의 대중 정책 변화에 소고기, 와인 등 호주산 농산물에 보복성 관세로 맞서며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는 "베이징이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는 전략 목표는 대미 동맹 해체"라며 "주요 대상 국가는 호주와 일본, 한국"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호주 정부는 베이징의 괴롭힘에 맞섰지만, 한국의 정치 지도층은 지레 겁을 먹고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나약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만일 한국 정부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의 독립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도박을 하는 셈"이라며 "한국이 중국의 진정한 본질과 야망에 눈을 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혹자는 미국에 줄서는 건 되고 왜 중국은 안 되느냐고 묻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미국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민주주의, 자유를 침해받았다고 느끼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홍콩의 민주화를 짓누른 중국의 억압적 체제는 우리가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와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호주에서 날아온 경고장을 허투루 여겨선 안 될 것입니다.

 


[중국의 조용한 침공 /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 김희주 옮김 / 세종서적 펴냄]